교토의 대표적인 전통공예품 중의 하나, 교야키·기요미즈야키 도자기

교야키·기요미즈야키

일본 전국에서 엄선해 온 재료들과 장인들이 모여 있는 교토에서 번성한 도자기

‘교야키 도자기’는 다도의 유행을 배경으로, 에도시대 초기부터 히가시야마 산기슭을 중심으로 널리 확산된 도자기. 반면에 ‘기요미즈야키 도자기’는 기요미즈데라 절의 참배도인 고조자카에서 만들어지던 도자기였습니다. 현재는 교토에서 제작되는 도자기 전체를 ‘교야키 ·기요미즈야키 도자기’라고 부릅니다.

형태도 문양도 각양각색

형태도 문양도 각양각색. 모든 기법이 융합.

‘교야키·기요미즈야키 도자기’에는 특정한 양식·기법이 정해져 있지 않고, 모든 기법이 융합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는 수도였던 교토에 일본 각지의 뛰어난 재료들과 장인들이 모여 있었던 점과, 그 문화를 후원했던 신사와 절, 황족, 귀족 등의 존재를 들 수 있습니다.

교야키 도자기의 창시자, 닌세이와 겐잔

仁清の壷
提供:MOA美術館

닌세이-仁清-에도시대 초기, 엽차 항아리의 명산지 단고국 구와다군 노노무라에서 교토로 상경하여 오무로닌나지 절 앞에서 요업을 허가받은 노노무라 닌세이(통칭:세이에몬, 생몰년 미상). 다도 장인으로 유명한 가나모리 소와의 지도와 닌나지노미야 친왕의 두터운 비호를 받으며 만들어진 그림 도자기는 그 단정하고 선명한 회화성과 뛰어난 물레 기술로 탄생한 화려하고 우아한 조형미로 인해 당시의 귀족, 다이묘(영주)들 사이에서 큰 사랑을 받으며 소중하게 다루어졌다고 합니다.

닌세이의 손이 들어가면 화려하고 우아한 그림 도자기로

교야키 도자기의 초기에는 고려 다완, 당물 차통, 미노 지방에서 구워진 세토 차통 등의 ‘복제품’이 아와타구치 등에서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쇼호 연간(1645~1648)에 시작된 닌세이의 오무로야키 도자기도 위와 같은 ‘복제품’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림 기술을 완성시킨 닌세이가 제작한 그림 도자기는 회화성뿐만 아니라 형태가 보다 세련되고 우아한 세계를 출현시켜 교야키 도자기의 여러 가마터(아와타구치야키, 야사카야키, 오토와야키, 미조로야키, 기요미즈야키, 슈가쿠인야키 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겐잔-乾山-
提供:MOA美術館

겐잔-乾山-교토의 일류 포목상, 가리가네야 오가타 집안의 삼남으로 태어났으며 화려한 화풍을 선호한 천재 화가 고린이 그의 형이었습니다. 겐잔은 젊은 시절에 오무로 나라비가오카의 산기슭에 ‘슈세이도’를 짓고 은둔 생활을 하며 일본과 중국의 시문과, 서예에 뛰어났으며 선에 심취하였습니다. 가까운 오무로 가마터에 자주 드나들며 닌세이에게 사숙하여 도자기 제조법을 배웠다고 합니다. 1699년, 37세에 교토의 서쪽 나루타키 지역에 가마터를 열었는데 교토의 북서쪽(乾)에 자리 잡은 까닭에 ‘겐잔(乾山)’이라 칭했다고 합니다.

닌세이에게 배운 도자기 제작법에 집착하지 않고 독자적인 작풍을 추구한 도자기를 제작하였습니다

닌세이로부터 도자기 제작법을 전수받았지만, 겐잔의 도자기 작품은 닌세이의 작풍을 모방하지 않았고 당초부터 린파의 화풍을 도입하여 독자적인 스타일을 추구한 도자기를 제작하였습니다. 장식 접시처럼 때로는 도자기가 가진 실용성과 조형미 등의 요소를 멀리하고, 그림과 디자인의 독자성·장식성을 전면에 내세운 작풍이 겐잔이 가진 독창성일지도 모릅니다. 형님인 고린이 그림을 그리고 겐잔이 시문을 쓴 형제가 함께 만든 사각 접시 등도 많이 제작되었습니다.

‘불씨가 꺼졌던 도자기’ 교사쓰마 도자기

사쓰마야키 도자기의 역사는 사쓰마번 17대 영주 시마즈 요시히로가 임진왜란(1592∼1598년) 당시 군사를 이끌고 조선으로 건너가80명 이상의 조선 도공을 강제로 데려 온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혼케 사쓰마(가고시마)에서 만들어진 도자기를 혼사쓰마라고 하며, 가고시마번이 문화진흥의 일환으로 파견한 장인들에 의해 교토에서 만들어진 사쓰마야키 도자기를 교사쓰마라고 합니다.

교사쓰마 도자기

교사쓰마 도자기는 표면에 가늘게 금이 가 있는 흰바탕에 다채로운 그림과 금색칠을 입힌 섬세하고 화려한 문양이 특징인 도자기입니다. 사쓰마야키 도자기는 막부 말기에 파리 만국박람회, 메이지 시대에 비엔나 만국박람회 등에 출품되어 유럽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켜, ‘SATSUMA’로 불리며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교사쓰마 도자기는 메이지시대에 구미 시장으로 수출되면서 크게 인기를 누렸지만, 다이쇼시대 이후에는 유럽에서 발발한 대전과 열악한 제품의 출현 등으로 수출이 둔화되어 교사쓰마의 제작이 거의 중단되어, 중심지였던 아와타구치의 도자기 생산도 그 불씨가 꺼져버렸습니다.

현대에 되살아난 교사쓰마 도자기

메이지시대에 크게 융성했던 교사쓰마 도자기, 그 찬란하고 화려한 페인팅 기법의 정교함을 되살리기 위해 기술 계승을 목표로 한 교야키 도자기의 페인팅 장인들이 현대인의 기호와 생활도구로 적합한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각도로 연구를 거듭하며 부활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현대에 되살아난 갖가지 교사쓰마 도자기 작품들과 메이지시대에 제작된 교사쓰마 명품 도자기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습니다. 꼭 한번 들러 주시기 바랍니다.

도자기 위에서

시대의 흐름 속에 변모하는 도자기

겐잔 이후, 히가시야마 산기슭에 자리잡고 있었던 수많은 가마터가 점차 쇠퇴하고 말았지만, 역사에 이름을 남긴 뛰어난 도예가들 가운데는 교토에서 처음으로 자기다운 자기를 제작해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오쿠다 에이센과 그의 뒤를 이어 본격적인 자기를 구워 교야키 도자기의 제작 영역을 넓힌 아오키 모쿠베이, 긴코도 가메스케, 닌아미 도하치·오가타 슈헤이 형제, 에이라쿠 호젠·와젠 부자 같은 인물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만든 작품의 특징으로는 중국, 한반도, 일본에서 역대에 걸쳐 만들어진 대부분의 도자기 기술과 작풍을 재현하고 응용하면서도, 그에 더해 각자의 개성을 가미한 점으로, 이를 통해 다채로운 작풍과 형태를 지닌 교야키·기요미즈야키 도자기가 탄생하였습니다.

※ 참고 문헌:다이요 도자기 시리즈 닌세이 겐잔※ 참고 문헌:Google Arts & Culture(리쓰메이칸 대학 아트 리서치 센터 제공)